<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평생 고생했다. (소감/후기)
좋은 영화라도 두 번 보기 힘든 영화가 있다. 나에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런 영화다. 두번 보기 힘든 영화. 그렇지만 또 볼거다.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예전에 이런 뉴스를 보고 욕했던적이 있었다. "사회사회일반 ‘271만원’ 배상금으로 돌아온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운동" (링크) 근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저렇게라도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해진 틀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정해진 틀을 누가 정하는가? 권력층이다. 그렇기에 권력층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사회가 크게 변할리는 없다. 틀을 꺠야 한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뭐든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런 생각을 굳건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한 평생 목수로 일했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실직하게 된다. 주치의가 일하지 말라고 했으니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질병수당을 신청하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질병수당이랑 실업수당 둘 다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행정상의 이유와 융퉁성(메뉴얼 사각지대를 배려하지 않는 공무원 때문)이 없는 공무원 때문이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평생, 사기도 치지 않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평생 정직하게 일했다. 그는 약자도 강자도 아니였고 오직 일만 했다. 그런 그가 하층민으로 전락하는데는 몇년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심장병으로 인해 약해지고,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굶어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1년도 채 안됐다.
영화는 사회적 안전망이 왜 중요한지, 개인이 얼마나 잘 나가든 한방에 몰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멀쩡하게 목수로 일했던 양반이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그를 대변해줄 사람은 오직 약자들 밖에 없다. 공무원들도 그를 도와주고 싶지만, 메뉴얼대로 할 수 있을뿐이다. 메뉴얼 바깥에서 그를 도와줄 순 없다. 징계를 받으면서까지 누구를 도와줄것인가?
그런 그에게 남은 수단은 항소밖에 없다. 항소, 굶고 아픈 몸으로 항소를 이길 때까지 버텨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법으로 승리 할 수 없는 이유가 이거다. 시간이 없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국선 변호사를 쓰든 뭘 하든 시간이 없어서 사건을 알아볼 수도 없고, 돈이 없어서 사건을 빨리 해결할수도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킬거 다 지키고 기다리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가? 난 아니라고 본다. 지킬거 다 지키기다가는 굶고 얼어 죽는다. 사회 안전망은 나를 보듬어 주지 않는데 어떻게 버티겠는가? 악으로 깡으로 울부 짖을 수 밖에 없다.
영화 요약)
★★★★☆ (4.5)
꼭 봐라. 사회는 따스하면서 차갑다.